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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례의 과정 -


저자 : 빅터 터너
출판사 : 한국심리치료연구소
출판일 : 2005 년 04 월 15 일
페이지수 : 316
판형 : A5
정가 : 15000 원  → 13500 원 (10 %↓)
전화번호 : 02-3477-6188
재고량 :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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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 -

빅터 터너는 아프리카 은뎀부 부족들과 더불어 1950-54년까지 살면서 그 부족의 일상생화에 동참하였다. 그는 사회, 경제, 정치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실천들을 부족이 사용하는 말로 직접 배웠다. 이 경험으로부터 일련의 저서들이 생겨났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의례의 과정]이라는 책이다.
-- 로저 아브라함즈(펜실베니아대학교 민속과 민족지학 교수). 새 문고판의 발문 중에서  

 
 

- 목차 -

목 차

새문고판의 발문
발간사
머리말

제1장 삶과 죽음의 의례: 그 분류의 단면 -- 25
제2장 은뎀부 의례에 있어서 쌍둥이의 모순 -- 82
제3장 의례과정의 전이현상과 탈구조 공동체 -- 144
제4장 탈구조 공동체: 그 양시과 과정 -- 195
제5장 겸손과 계급제도: 신분상승과 역전의 전이현상 -- 244

참고문헌
옮긴이의 붙임 말
 

 
 

- 초록 -


「 의례의 과정 」

빅터 터너 지음
박근원 옮김



제1장

삶과 죽음의 의례: 그 분류의 단면

모르간과 종교

처음부터 밝히고 싶은 것은, 루이스 헨리 모르간이 나에게 있어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학창 시절의 길잡이가 되었던 북극성과 같은 존재의 한 분이었다. 그가 남긴 모든 저작물은 격한듯 하면서도 명료한 정신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1966년도 모르간 강좌를 맡게 되었을 때, 나는 스스로 아주 불리한 입장에 서 있음을 곧바로 느낄 정도로 심각성을 의식하게 되었다. 모르간은, 비록 수많은 종교의례를 충실하게 기록하기는 하였지만, 종교의 연구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 친족관계와 정치문제처럼 예리한 관심을 기울이지는 못하였다. 당시 종교의 신념과 실천이 내 강연의 주제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모르간의 연구태도를 아주 분명하게 강조하는 두 개의 인용구를 들어본다. 그 첫 번째 것은 그의 고전적인 저서 『고대 사회』(Ancient Society, 1877)의 한 구절이다. “종교적인 이념의 발달은 완전하게 만족할 정도로 설명이 불가능한 본질적인 어려움들로 둘러싸여 있다. 종교는 상상적이고 정서적인 특성을 폭넓게 다루고 있고, 또 결과적으로 불확실한 지적인 요소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든 원시종교는 기괴한 것이고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Morgan, p.5). 두 번째 인용은 핸섬 레이크의 종교에 관한 디어도르프의 학문적인 연구의 한 구절이다. 모르간의 저서 『이로쿠와족의 동맹』(League of the Iroquois, 1851)에 있는 핸섬 레이크의 혼합주의적인 복음에 관한 보고는 젊었을 때의 엘리 파커의 일련의 수기에 기초한 것이다(엘리 파커는 세네카 인디언으로서 뒤에 그랜트 장군의 군사담당 비서가 된다). 이 보고기록은 핸섬 레이크의 손자가 토나완다에서 노래한 복음(Good Message)의 본문과 그 번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디어도르프에 따르면, “모르간은 예언자의 손자 지미 존슨이 말한 보고에 충실한 엘리 파커의 기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 복음과 그 복음을 노래할 때 행해졌던 의례에 관해서는 엘리 파커의 해석으로부터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Deardorff, 1951, p. 98, 그리고 William Fenten, 1941, pp. 151-157 참조).
모르간과 파커 사이의 왕복 편지를 읽어보면, 만일 모르간이 엘리 파커가 이야기한 것에 좀 더 주의 깊게 들었더라면, 『이로쿠와족의 동맹』을 읽은 세네카 인디언들의 아래와 같은 비판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르간이 말한 바, 실제로 잘못된 것은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정말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이런 교묘한 논평으로서, 이것은 아마도 이로쿠와족의 문화의 정치적인 측면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인 측면에 관한 모르간의 저작활동에 초점을 둔 것 같은데, 세네카 인디언들이 “정말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내 생각으로는, 세네카족의 논평이 “상상적이고 정서적인” 것에 대한 모르간의 불신감, 종교에도 중요한 합리적인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기를 주저했던 것, 그리고 19세기의 한 학자로서 고도로 “발전된” 의식 수준에서 “기괴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 그 자체로서(ipso facto)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그의 신념을 지적하고 있다. 이 논평은 또한 이로쿠와족의 종교생활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로, 찰스 호켓이 이질 문화의 “내적인 전망”(the inside view)이라고 지칭한 것을 파악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로서, 그것은 이질 문화의 기괴한 구성요소와 상호관계성의 대다수를 이해할 수 있게 하였음에도, 모르간은 무능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것과 관련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바흐호펜은 한 편지에서 모르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독일의 학자들은 옛날 것을 현대인의 생각에 따라 판단함으로 이해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다만, 과거의 창조에 있어서 ‘자신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들 자신과 다른 정신의 구조를 통찰하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다”(Bachofen, 1969, p.136). 모르간이 이것을 읽었더라면 그 의미를 숙고했음직하다. 이 논평에 대해서, 최근 에반즈-프리챠드 교수는 이렇게 주석을 달고 있다: “그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 원시적인 종교와 같은 어려운 주제를 다룰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런 경우에, 보다 단순한 사람들의 사고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번역하고, 우리의 사상을 그들의 사상 속으로 이식할 경우, 모든 것이 너무 쉽게 되어버린다”(Evans-Prichard, 1956b, p.109). 나는 여기에 이런 단서를 추가하고 싶다. 종교에 관한 한, 예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더 단순한” 민족이란 있을 수 없다. 그저 어떤 민족은 기술문명이라는 점에서 우리보다 단순한 민족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상상적”이고 “정서적인” 생활은 언제 어디서나 풍요롭고도 복잡하다. 부족적인 종교의례의 상징적인 의미가 얼마나 풍요롭고 복잡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제부터 내 과제의 주요 부분이다. 또 “우리의 정신구조와 다른 정신구조”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그것이 인식구조의 차이 문제가 아니고, 같은 인식구조가 다양성을 포함한 문화의 경험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이다.
한편으로 임상적인 심층심리학의 발달과, 다른 한편으로 전문적인 인류학의 현지조사 결과, 모르간이 “상상적이고 정서적인 성격”이라고 지칭했던 많은 노작이 존중과 주목의 대상이 되었고, 또 과학적인 잣대로서 연구되기도 하였다. 프로이트(Freud)는 신경증 환자의 환상에서, 꿈 속에 나타난 애매한 심상에서, 입담과 익살에서, 또 정신병 환자의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그 말에서, 정상적인 정신구조를 연구하는 실마리를 찾곤 하였다.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는 문자를 모르는 사회의 신화와 의례의 연구에서, 이런 특성을 검출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 사회의 기초에 깔려 있는 지적인 구조에서, 어떤 근대철학자의 체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흡사한 특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합리주의의 혈통 가운데 있는 그 밖의 다수의 학자와 과학자도, 모르간 시대 이래로, 종교연구를 위해 수십 년 넘게 학문적인 생애를 바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그 예로서 열거하고 싶은 이들은 아래와 같다: 타일러(Tylor), 로버트슨-스미스(Robertson-Smith), 프레이저(Frazer) 그리고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뒤르깽(Durkheim), 모오즈(Mauss), 레비-브룰(Levy-Bruhl), 후버트(Hubert)와 헤르즈(Herz), 나아가서, 반 제넵(van Gennep), 분트(Wundt) 그리고 막스 베버(Max Weber). 인류학의 현지조사 연구자들로, 보아스(Boas)와 로위(Lowie), 말리노브스키(Malinowski)와 레드클리프-브라운(Radcliffe-Brown), 그리올(Griaule)과 디털렌(Dieterlen)등은 그 밖의 동시대의 많은 학자와 후계자들과 더불어, 문자 이전 사회의 종교의례 연구의 현장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들은 세심하고 정교한 관찰력으로 수백 가지 종교의례를 접해 왔고, 현지 종교 전문가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로부터 신화와 기도의 토착적인 본문을 들고 기록하는 일을 하였다.
이런 사상가들의 대부분은, 어떤 신학적인 입장을 가지고 종교현상을, 극도로 다양해서 서로 모순되기까지 하는 심리학이나 사회학적인 여러 원인의 산물로 설명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그렇게 설명해 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들의 초인적인 기원을 추구하는 것을 거절하는 연구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인 신념과 행동이, 인간의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구조의 유지와 또 그것들의 근본적인 변혁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여기서 신학적인 논쟁에 말려들 생각은 없다. 나는 할 수 있는대로 스스로를 종교적인 여러 관점의 경험주의적인 연구에 국한시키되, 특별히 아프리카의 종교의례의 특성 몇 가지를 밝혀내는 데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나는 모르간의 위대한 학문과 우리 학문분야에서 그가 차지하는 입지를 존경하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후배들에 대한 그의 생각지 않은 도전에 맞서고 싶다. 그래서 현대 인류학자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최상의 개념적인 도구를 사용해서, 지금에 와서, 문자 이전 사회의 신비스런 종교현상의 많은 부분을 이해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중앙아프리카에서의 의례연구

내가 2년 반 동안, 현지조사 연구의 대상이었던 잠비아 북서부의 은뎀부(Ndembu)족 사람들이 수행한 의례에 대해서 측근에서 관찰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면 한다. 은뎀부족은 모르간이 관찰했던 이로쿠와스족의 경우처럼, 모계사회로서, 농경과 수렵을 겸했고, 거기에다 고도의 의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은뎀부족은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문화의 큰 집단에 소속되어 있어서, 목각과 조형미술의 뛰어난 기술과, 의례적인 상징의 세련된 발달을 겸비하고 있다. 이 지방 부족의 대다수는 복잡한 입회의례(initiatim rites)를 행하고 있는데, 비법의 전승에 따라 수련자를 훈련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숲 속에 격리시켜 둔다. 그 훈련에는 종종 가면을 쓴 춤꾼이 나타나 조상의 영이나 조상신의 역할을 연출하기도 한다. 은뎀부족은 그 북쪽과 서쪽 변방의 이웃, 카탕가의 룬다족, 루발레족, 초퀴족과 루찬시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례에다 아주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의 동쪽 변방의 이웃, 카온데족, 람바족과 일라족의 경우는 비록 의례는 행하고 있지만, 의례의 뚜렷한 종류가 많지 않고 그 상징성도 풍부하지 않다. 사내 아이의 할례의례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다양한 종교적인 관행도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지 않다.
내가 은뎀부족 가운데 들어가 현지 조사를 시작할 때, 나는 북로데시아(지금의 잠비아)의 행정 수도 루사카에 있었던 로드즈-리빙스톤 사회조사 연구소의 선배들이 설정한 전통 안에서 작업을 하였다. 이 연구소는 영국령 아프리카에 최초로 설립된 것으로, 1938년에 창립되었고, 원주민과 비원주민 사이의 영구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 수립에 관한 문제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 연구를 위한 센터로서의 취지를 지닌 것이었다. 고드프레이 콜슨과 막스 글러크만 다음으로 엘리자벳 콜슨과 클라이드 밋첼 등 연구소 소장의 지도 아래, 이 연구소의 연구조사자들은, 부족의 정치?법률 체계, 결혼과 가족관계, 도시화와 노동이민에 관한 문제, 마을 구조의 비교, 부족의 생태적이고 경제적인 체계 등등의 실태에 관해서 현지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들은 또한 대량의 지도를 제작했고, 당시 북로데시아의 모든 부족을 출신 계통의 관점에서 여섯 개의 집단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였다. 루시 메이어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로드즈-리빙스톤 연구소의 정책형성에 대한 공헌은, 영국령 아프리카에 있는 여타 조사연구기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특수한 상황에 적절한 방안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입안자가 다루고 있는 여러 가지 역학관계(forces)를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었다(Lucy Mair, 1960, pp.98-106).
내가 현지조사연구를 시작하였을 당시에는 이 역할관계 가운데 종교의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종교의례에 대한 관심은 로드즈-리빙스톤 연구소의 연구원들 가운데에는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레이몬드 압소르프 교수는, 지난 30여년의 아프리카인의 삶의 여러 측면을 다룬 연구소의 간행물이 그 때까지 99종이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 종교의례를 대상으로 한 것은 겨우 3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Raymond Apthorpe, 1961, p.ⅸ). 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로드즈-리빙스톤 논문』(중앙 아프리카 부족생활에 관한 짧은 연구논문들) 31편 가운데, 4편이 겨우 종교의례를 주제로 한 것이고, 그 가운데 2편은 내가 쓴 것이다. 분명한 것은, “원시종교”에 대한 모르간의 태도는 4분의 3세기가 지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 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었던 고드프레이 윌슨은 아프리카의 종교의례 연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 부인, 모니카 윌슨과 함께 탄자니아의 은야규사족의 종교에 관한 집중적인 현지조사 연구를 실시했고, 부인은 단독으로 훌륭한 종교의례에 관한 연구논문들을 발표하였다. 그녀는 여기서 아주 적절한 지적을 하고 있다: “종교적인 의례는 그들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가치를 표출한다... 인간은 의례를 통해서 자기들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바를 표현한다. 그리고 그 표현형식이 관습화되고 의무화되었기 때문에, 표출되는 것은 그 집단자체의 가치인 것이다. 나는 의례의 연구가 인간사회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생각한다”(Monica Wilson, 1954, p.241).
만일 윌슨의 견해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옳다면, 부족적인 의례의 연구는 “원주민과 비원주민” 사이의 영구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수립하는 문제를 연구한다”고 하는 연구소 설립의 근본정신의 범위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만족스러운 관계”는 깊은 상호이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종교의 연구는 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의 연구기관의 업적으로, 특히 정치적인 독립이 성취될 전후의 시기에, 눈에 띌 정도로 진척이 되었다. 최근에는, 사회과학 일반에 있어서 종교적인 신념과 행동이 경제적이고,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여러 관계의 복잡하게 얽힌 양식을 반영하거나 표현되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이라고 널리 인식되어 오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종교적인 신념과 행동이, 사람들이 그런 여러 관계에 대해서 또 그들이 활동하는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인 열쇠로 보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은뎀부족 의례의 예비조사

나는, 나와 동시대의 사회과학자들이 종교연구에 있어서는 “종교적 음치”라고 이야기해 왔다(이 용어는 막스 베버가 자기 자신에게 적용한 말이지만 그는 이 말과는 아주 들어맞지 않는다). 그것은 주로 종교의례의 자료수집에 임하여서 나도 처음에 느꼈던 그런 주저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현지조사의 처음 9개월 동안, 나는 친척, 마을구조, 결혼과 이혼, 가족과 개인의 생활비, 부족과 그들이 사는 마을의 정치, 그리고 농사의 주기 등에 관해서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수집하였다. 내 노트에는 가계도로 가득했고, 마을의 주거 분포도도 여러 장 마련했으며 통계조사의 자료도 수집하였다. 나는 가끔씩 마구 내뱉는 친족용어를 파악하려고 길거리를 배회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항상 밖으로부터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 불안감은 내가 현지의 언어에 부자유를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 막사 가까이에서 의례를 위한 북소리가 늘 둥둥거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도 나를 뒤에 남겨두고 가끔씩 그 의례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 그들은 한번에 여러 날 동안 계속되는 ‘은쿨라’, ‘우방우’ 그리고 ‘우빈다’라고 하는 자주 듣는 의례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은뎀부족 문화의 일부분이라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자 한다면, 종교의례에 대한 내 편견을 극복하고 그 조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은뎀부족 주거지에 머물게 된 당초부터, 초대에 의해서, 빈번하게 행해졌던 여자아이들의 성녀의례(Nkang’a)에 참가해서, 내가 관찰한 것을 될 수 있는대로 정확하게 기록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관습화된 몸짓과 의례적인 연출을 위한 신비스런 노래를 부르는 것을 관찰하는 것과, 그 몸짓과 노랫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의 계몽을 위해서, 처음으로, 『지방편람』을 활용하였다. 그것은 식민지 정부의 행정관들이 그들에게 흥미있는 것으로 다가온 사건과 습관에 관해서 닥치는 대로 기록한 것들을 편집한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은뎀부족의 ‘최고의 신’과 조상의 신령에 관한 신앙과 각기 다른 의례에 관한 짧은 보고를 접하게 되었다. 그 중의 어떤 의례는 직접 관찰한 보고였으나, 대부분은 은뎀부 지방정부의 심부름꾼과 사무원과 같은 고용원들의 보고에 근거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내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몇 가지 종류의 의례에 관한 예비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그때까지 내가 보아온 깊고 복잡한 여자아이의 성녀의례에 관한 만족스러울 만한 설명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 나는 ‘이케렝게’(Ikelenge)라고 부르는 추장과 연속적인 면담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예외적으로 유능한 사람이었고 영어에도 아주 능통했다. 이케렝게 추장은 그 자리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주요한 은뎀부족의 의례의 명칭과 목록을 또 각 의례의 주된 특징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 제공해 주었다. 곧바로 발견한 것은, 은뎀부족은 자기들의 의례체계에 대한 외부인의 관심에 전혀 분노하지 않고, 또 자기들의 신앙에 경의를 가지고 대하는 자라면 아무에게나 의례 장소에의 입장을 흔쾌히 허락한다는 사실이다. 이케렝게 추장이 그 뒤로 사냥꾼의 축제(Wugang’a)에 속하는 의례에 나를 초대해 주었다. 사냥이라는 일련의 경제활동이, 적어도 사냥에 관한 의례적인 특수용어를 파악하지 못하고서는 이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바로 이 의례의 현장에서였다. 사냥의 힘과 사내다움을 직접 표시하는 상징의 수집을 통해서, 은뎀부족의 사회조직의 몇 가지 특징에 대해서, 특히 사회구조가 여성들을 통해서 지속되는 모계사회에 있어서 남성 친족간의 동시대적인 결속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이 이상 성적인 역할의 의례화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어떻게 숫자적인 자료의 분석에서 이런 규칙성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즉, 마을 사람들의 가계와 통계조사, 그리고 직무계승과 재산상속의 기록 등의 분석에서 드러나는 어떤 규칙성이 의례의 현장에서 상징들로 부과되고 표현되는 가치의 조명 안에서만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케렝게 추장이 나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도움에는 한계가 있었다. 첫째로, 그의 지위와 그것과 관련된 많은 역할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자기의 책임지역 마을을 떠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지역선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험담이 날개 돋친 듯 퍼지는 상황에서 그가 수많은 이교의 행사에 느긋하게 출석한다는 것은 너무나 민감한 사안이었다. 더구나 내 자신의 조사도 곧바로 마을 생활의 현재 진행의 과정을 미시 사회학적으로 조사하는 일이었다. 나는 막사를 추장이 있는 마을에서 보통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이동하였다. 여기서 나의 가족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래서 은뎀부족의 생활에 있어서 의례가 지니는 중요성에 눈이 뜨인 나의 아내와 나는 이전에는 이론적인 눈가리개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은뎀부족 문화의 많은 측면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나델(S.F. Nadel)이 말한 바 있듯이, 사실은 이론과 더불어 변화한다. 새로운 사실은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낸다.
마침 이 때, 로드즈-리빙스톤 논문집의 제2호로 출간된 윌슨 부부의 공저 『아프리카 사회의 연구』를 읽었다. 거기에서 의례가 현재의 관심사가 되어 있는 많은 아프리카의 사회에는 거기에 해석을 제공하려는 많은 종교적인 전문가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뒤에 모니카 부인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 문화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상징의 번역에 기초하지 않은 분석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Monica Wilson, 1957, p.6). 그 때 나는 은뎀부족의 의례전문가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관찰한 의례에 관해서 이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 그 원문(texts)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들이 의례의 장소에 갈 수 있고 또 그들의 주석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인류학의 현지조사들이 했던 일을 우리도 반복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우리도 약품을 나눠주고 상처에 붕대를 감아주고, 내 아내의 경우 뱀에 물린 사람들에게 혈청 주사를 놓아주기까지 하였다. (그녀는 의사의 딸로서 이런 점에 있어서는 나보다 담대했다). 은뎀부족의 집단적인 의례의 대부분이 병자를 위한 것이었고, 유럽의 의약품이, 그들 자신이 만든 약품과 같은 종류의 신비스런 효력을 가지지만 그보다는 빠른 효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병을 고치는 전문가들이 우리들을 동료로 생각하고 그들의 병고치는 의례현장에 우리가 출석하는 것을 환영하였다.
나는 리빙스톤 박사의 『선교의 여로』라는 저서에서 이런 것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환자의 상태가 어떠한지 물을 때마다 현지의 주술사와 상담할 것을 꼭 밝혔고, 그랬을 때마다, 이 때문에 중앙아프리카 주민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좋은 대화관계를 성립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리빙스톤 박사의 실례를 반복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일로 인해서, 여러 의례의 비밀스런 장면에 참관이 가능했고, 거기에 사용되었던 수많은 상징에 관한 비교적 신뢰할 만한 해석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신뢰할 만한”이란 말은 물론, 그 해석 하나하나가 전체로서 서로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해석은 사실상 개개인의 자유로운 연상이나 기발한 견해가 아니고, 은뎀부족의 문화에 대한 표준화된 해석학을 성립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또 의례 전문가가 아닌 은뎀부족의 갖가지 해석을 수집하였고, 또 적어도 당장 직접적인 고려 대상의 의례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의 해석들도 수집하였다. 은뎀부족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나 여자나, 적어도 하나의 의례조직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나 이상의 의례에 관한 비밀스런 지식이라는 관점에서 “달인”(expert)이 아닌 한 연장자를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들은 차근차근 관찰 자료와 해석적인 의견을 한 덩어리로 묶고, 이것들이 분석되는 과정에서 어떤 규칙성이 드러나고, 이 규칙성에서 일련의 유형으로 표현되는 구조(structure)의 유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유형의 몇 가지 특징에 관해서는 뒤에 밝히기로 한다.
이 모든 기간동안, 우리들은 다만 인류학적인 승인을 위한 종교의례의 연출을 부탁한 일이 없었다. 그런 인위적인 연극에 대해서 변호할 의무가 우리들에게는 없었다. 또 실제문제로서, 자발적인 의례의 이행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자주 우리들이 직면한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한 날에 이행되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의례 가운데 어디에 출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우리들이 점차로 마을 생활과 융화되면서, 의례 이행의 결정은 그 마을 사회생활의 위기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곳에서 의례 이행의 사회적인 역할관계에 대해서 길게 서술했기 때문에, 이 강좌에서는 그냥 지나가고자 한다. 여기서 다만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은뎀부족의 경우, 마을과 “인근 촌락”(vicinage-나는 이 용어를 인근 집성촌의 군락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의 차원에서 사회적인 갈등과 의례와의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고, 갈등 상황의 다수는 의례 이행의 높은 빈도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소마’ 의례

이 장에서의 나의 중요한 목적은 은뎀부족의 ‘이소마’(Isoma)라는 의례의 상징이 지니는 의미를 검토하는 일이다. 그것은 관찰 자료와 현지인의 해석 자료를 근거로 이 상징의 의미 구조의 양식을 조립하는 일이다. 이런 과제 수행의 첫걸음은, 은뎀부족이 그들 자신의 상징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그 설명하는 방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다. 나는 특수한 것들로부터 시작해서 일반화에로 옮겨가는 수순을 밟겠다. 이 길을 따라가는 모든 단계에서 나는 독자를 내 소신대로 안내할 것이다. 이제 나는 세 번의 기회에서 관찰하고 이에 대한 상당량의 상징해석 자료를 가지고 있는 ‘이소마’ 의례를 상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은뎀부족의 많은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독자의 관용을 필요로 한다. 상징에 관한 은뎀부족의 설명으로 중요한 부분은, 이 부족 나름의 어원연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뎀부족 사람들은, 주어진 상징의 의미를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거기에 붙여진 명칭으로부터 끌어낸다. 그래서 그 의미는, 어떤 기본어나 어근, 종종 그 동사와 결부되어 있다. 학자들이 밝힌 바로는, ‘반투’(Bantu)와 같은 다른 사회에서 이런 종류의 작업은, 많은 경우에 공통의 어원에서의 파생어라기보다는 발음의 유사성에 의존하는 허구의 어원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족 자신들로서는, 이런 방식이 의례의 상징에 관한 “설명”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여기서 “은뎀부족의 내면의 입장”, 말하자면 은뎀부족 자신들은 자기들의 의례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찾아보려고 한다.

‘이소마’의례를 이행하는 이유

‘이소마’(혹은 Tubwiza)의례는 은뎀부족에 따르면 “여자의 의례” 혹은 “출산의 의례”의 분류항목(muchidi)에 들어간다. 이 항목은 모니카 윌슨의 용어를 빌리자면, “조상의 영 혹은 망령의 의례”에 속하는 하나의 하위분류이다. 의례를 뜻하는 은뎀부족의 언어는 ‘치디카’(chidika)이다. 이 말은 또한 “특별한 약속” 아니면 “의무”를 뜻한다. 인간은 조상을 받들어 모셔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다. “그들이 너희를 낳아주지 않았는가”하고 은뎀부족은 말한다.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의례는 사실상, 개인이나 조직집단이 이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행되는 것이다. 어떤 개인은 자기 자신의 태만 때문에 아니면 친족집단을 대표해서, 은뎀부족이 말하는 대로, 망령에 “붙잡혀서” 그 사람의 성별이나 사회적인 역할에 해당된다고 생각되는 불행으로 고통당한다고 믿게 되었다. 여성들에게 해당되는 불행은 그들의 생식기능에 대한 어떤 종류의 장애에 있다. 이상적으로는, 한 여인이 그의 동료들과 평화롭게 살고, 죽은 친족을 항상 잊지 않고 지낸다면, 그는 결혼해서 “건강하고 귀여운 자녀”(은뎀부족의 표현을 번역하자면)의 어머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여성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거나 말다툼으로 갈라진 집단에 속하고, 동시에 자기의(죽은 어머니나 어머니의 어머니, 그 밖의 죽은 연상의 모계친족의 여성의) 망령을 간장에서 망각해 버린(우리들은 심장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런 여성이라면, 분노한 망령에 의해서 그 생식력(lutemu)이 “닫혀 버리는”(ku-kasila) 운명에 처하게 된다.
모계의 후손으로 부계거주혼제를 겸비한 은뎀부족은 작지만 유동적인 여러 마을에서 생활한다. 이런 배합의 결과로서, 아이들의 본래 혈통과 거주지는 어머니를 통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어머니인 여성들은 생식 가능한 기간의 대부분을 자기 모계친족의 마을에서가 아니라 남편의 마을에서 보낸다. 그러나 그것은 일률적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모계사회인 토로브리안드 섬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결혼양식으로 생활하고 있는 여성들의 아들들이, 청년기에 이르면, 어머니의 남자 형제나, 다른 어머니쪽 친척이 있는 마을에 가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결과의 하나로서, 결혼해서 아이들이 생길 경우, 그 자녀의 거주지 결정 때문에, 그 여인의 남편과 그녀의 남자 형제들, 또 어머니의 형제들 사이에 표면에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진다. 어머니와 그 아이들 사이에는 역시 끈끈한 유대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짧거나 긴 일정기간이 지나면 여인들은 자기 자녀들을 따라 자기 모계친족의 마을로 가게 된다. 은뎀부족의 이혼 건수를 조사해 보면, 이 마을의 이혼율은 중앙 아프리카의 모든 모계사회 가운데 가장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지역의 신뢰할 만한 많은 자료에 따르면 이혼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여성들은 이혼으로 자기 모계친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언제나 강한 이유에 따라’(a fortiori) 그들의 자녀들이 살고 있는 자기의 모계친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주 현실적인 의미에서 여성들을 통해서 지켜지는 모계제 마을의 계속성은 결혼의 단절, 이혼에 의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여성이 자기 어린 자녀들과 자기 남편과 함께 살며, 여인은 남편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는 정당한 규범을 준수하는 한, 그녀의 자녀들을 자기 모계사회 마을의 현재 구성원이 되게 해야 한다는, 역시 동등하게 중요한 규범은 지킬 수 없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생식기능에 장애가 생기고 일시적으로 불임상태를 초래한 여성의 고통은 직접 관계가 있는 그녀의 모계친족의 여성들-그 자신의 어머니나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망령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희생자의 대부분은, 점괘의 판결로, 모계친족의 망령이 씌워서 아이를 못 낳는다고 알려졌을 때, 대부분 그녀들의 남편과 동거하고 있다. 은뎀부족이 흔히 말하는 대로, 여인들은 자기들의 직접적인 조상들의 망령뿐만 아니라 그 모계친족의 직계 조상의 망령까지 “잊어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이런 망령이야말로 남편의 마을과는 다른 마을을 형성하는 핵심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이소마’의례를 포함해서, 병을 고치는 의례는 그 사회적인 기능의 하나로서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계집단의 구조적이고 중심적인 이런 악령들을 “그녀들에게 기억하게 만드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망령이 가져오는 불임의 조건은 일시적인 것으로서 적절한 의례의 이행으로써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자기를 괴롭히는 망령을 기억하고 또 자기 모계친족에 대한 본래의 의무를 깨달을 때 정지된 그녀의 생식력이 되돌아온다. 그녀는 자기 남편과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으나, 다시 한번 그녀와 그 자녀들의 궁극적인 충성심의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 명심하게 된다. 두 개의 규범 사이에 있는 이 모순으로 그 위기는 상징이 풍부한 의례와 의미있는 임신으로써 해소가 된다.

의례진행의 형식

‘이소마’의례는, 다른 여성의례와 같은 시간대에 진행된다는 통시적인 측면, 곧 하나의 의례 진행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어느 경우에나 여성은 산부인과적인 장애를 앓고 있다. 이 경우 그녀의 남편이나 모계친족의 남자가 점쟁이를 찾아나선다. 그 점쟁이는, 망령이 은뎀부족이 말하는 대로, “묘에서 나와서 그녀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정확한 병명을 붙여준다. 그 상태의 설명에 따라 그녀의 남편이나 모계친족의 남자가 ‘주술의사’(chimbuki)를 고용한다. 이 의사는 “약을 알고 있고” 고통을 주는 망령을 달랠 수 있는 의례 진행의 수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의례 진행의 경우는 그것을 주재한다. 이 의사는 또 자기를 도와줄 다른 의사들을 소집한다. 이 의사들은, 이전에 같은 종류의 의례를 체험하고 병고치는 의례집단과 함께 했던 여성들이거나, 모계친족이나 인척관계로 이전의 병력이 있는 이와 직접 관계된 남성들이다. 환자들(ayeji)은 이 의례집단의 회원이 되기 위한 “지원자”요, 의사들은 그 집단의 “숙련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고통을 주는 망령들(akishi)은 그 의례집단의 숙련자였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의례집단의 구성원은, 이와 같이 마을과 혈통관계를 초월해서, 의례집단에 가입하고자 하는 지원자로서 아픈 여성이 현재 아파하고 있는 꼭 같은 고통을 함께 하는 “아픔의 공동체” 아니면 “이전에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의 공동체” 같은 것을 한시적으로 형성하게 된다. ‘이소마’의례와 같은 치유의례 집단의 구성원은 부족의 경계를 초월하고 있다. 문화와 언어적으로 가까운 관계가 있는 루발레, 초크웨, 루차지 등의 부족 사람들도, 은뎀부족의 ‘이소마’의례에 숙련자로서 또 의례를 실제 진행하기 위해서 참가한다. 의례집단의 ‘원로’(mukulumpi)급과 ‘수장’(weneni)급의 숙련자는, ‘이소마’와 같은 여성의례의 경우까지도, 일반적으로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모계사회의 경우처럼 사회구성은 여성을 통해서 이뤄지지만, 권위는 남자들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다.
이 여성의 의례는, 반 제넵의 저작으로 유명하게 된 세 단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째 단계는, ‘일렘비’(Ilembi)라고 부르는데, 지원자를 세속사회에서 분리시킨다. 둘째단계는 ‘쿤쿤카’(Kunkunka)라고 부르는데(문자적으로는 움막집을 뜻함) 그녀를 세속생활에서 부분적으로 격리시킨다. 셋째단계는 ‘쿠-툼부카’(Ku-tumbuka)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축제적인 춤을 추는 것이다. 망령의 괴롭힘을 털어버리고 지원자가 일상적인 생활로 복귀하는 축제이다. 이소마의례의 경우, 이것은 지원자가 아이를 낳아 걸음마를 걸을 단계까지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