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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恨)의 신학의 새로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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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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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의 신학의 새로운 가능성
이재훈 박사

들어가면서

1970-80년대의 한국 지성사회는 한의 열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치 한에 대한 논의의 홍수를 거쳤다. 그러나 돌이켜 보건대 당시의 정치 사회적 여건 때문에 수많은 논의들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결과들을 도출하기는 어려웠다. 한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그 사람 자신이 스스로의 한을 토해 내기에 급급한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이 논의에 있어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김지하, 고은 등을 비롯해서 서남동, 안병무, 현영학, 문동환, 서광선 등의 민중신학자들의 삶의 정황이 군사독재에 의한 억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극도의 정치적 모순이 어느 정도 해소된 오늘 이 한의 주제를 다시금 논의하는 것은, 한의 열병시기에 쏟아져 나온 창조적인 통찰들을 정리하고 체질하여 보다 학문적이고 심화된 내용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희망의 근거 위에서 본인은 첫째로, 나름대로 한국문화 안에서 형성된 한의 개념의 혼동을 정리해 보고, 둘째로, 현대 정신분석학적인 대상관계이론을 활용하여 한에 대한 심리학적인 구명을 시도해 보겠으며, 셋째로, 초기 민중신학자들의 한의 신학을 이어받아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1. 한국문화와 한(恨)

초기 민중신학자들의 한의 논의가 갖는 한계들 중에 중요한 하나는 한국의 문화전통 안에 보다 확고한 기반을 갖지 못했다고 하는 점이 될 것이다. 민속학, 신화학, 민속예술, 무속학, 정신의학 등의 학자들과의 상호교류가 부족함으로 해서 민중신학의 한의 이해가 깊이와 넓이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민중신학의 한의 논의가 한의 신학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한국문화에 대한 보다 진지한 접근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국문화를 진지하게 취급하고자 할 때 부딪치는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한국문화 안에서 한이 가지는 의미가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다양해짐으로서 혼동과 모순들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논의를 진행시키기 이전에 먼저 한의 개념 안에 들어와 있는 몇 가지 혼동들을 지적해 보겠다.
첫째, 한을 생명에너지 그 자체로서 보는 혼동이 있다. 소설가 박경리는 한을 그 자체로서 무한히 흐르는 민족정신의 원동력과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는 한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보다는 한은 본래의 순수한 정신 에너지가 상처입고 왜곡됨으로써 오염된 정신 에너지로 보아야 한다. 이 한의 에너지가 긍정적 에너지로 변화될 수 있고 예술 창조와 건강한 사회건설의 원동력으로 활용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변화와 승화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 변화와 승화의 과정을 거치기 이전의 한은 미화될 수 없는 요소를 그 안에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한을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이해하는 혼동이다. 한의 구체적인 자리를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억압적인 사회의 구조에 두고자 했던 시도들이 있어왔다. 이런 현상은 한편으로 한의 개념의 확장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개념의 확장이 살아있는 인간의 마음과 감정에 자리잡고 있는 한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을 때, 그런 개념은 또 다른 혼동을 가중시킬 수 있다.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구조악으로 인해 한이 생길 수 있다. 남북의 분단이 민족의 가슴에 한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구조악이나 남북분단이 곧 한은 아니다. 다만 그 분단으로 인해 생긴 한을 가진 사람의 詩學안에서 분단은 곧 한이라는 식의 개념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을뿐이다.
셋째, 한과 정신병리와의 관계에 대한 혼동이 있다. 한은 곧 정신병리라고 생각하는 견해나 한은 한이며 정신병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는 두 개의 극단적인 견해가 있다. 그러나 좀 더 진지하게 살펴본다면 한의 성격과 질에 따라서 정신병리일 수도 있고 보다 건강에 가까운 모습일 수도 있다. 사실 한은 한편으로 정신병리의 총체적인 표현일 수 있으며 다른 한편 그것은 승화되고 변화될 때 건강한 삶의 모습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깊은 정신병리와 관련된 한으로부터 건강에 관련된 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질의 한의 종류가 있으며 이 다양성 안에는 내적인 관련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혼동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한에 대한 연구가 정신병리의 연구결과들과 관련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넷째, 한을 심적 상처의 기억과 동일시하는 혼동이 있다. 한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할 때 그것은 쉽게 그 사람에게 아픔, 슬픔, 분노, 수치 등을 수반하는 기억과 동일시된다. 물론 그것은 한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한은 보다 깊은 차원을 갖는다.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심적 상처의 기억들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상처들 배후에는 그것들이 상처로 기억되게 하는 원인으로서의 상처들이 있다. 근본적인 상처는 의식안에 자리잡고 있지 아니하고 무의식안에 그것도 아주 깊은 인격의 핵심구조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 한의 근원적 자리가 있다. 이 근원적 자리에 대한 이해없이는 한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가 불가능하다.
다섯째, 개인의 한과 집단적인 한의 문제에 관련된 혼동이 있다. 집단은 개인으로 구성되며 집단 안에서 개인은 집단과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간다. 이 둘은 뗄 수 없는 상호연관성 속에 있다. 특히 한의 연구에 있어서 개인의 한과 집단적인 한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개인의 한의 연구를 위해서 개인정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면 집단적인 한의 연구를 위해서는 집단적 정신의 산물인 신화, 전설, 동화, 종교, 역사, 예술 등의 연구가 필요하다.

2. 한(恨)의 개인 심리적 구조

한을 개인의 심리구조에 생긴 상처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문화 안에서 전혀 새로운 통찰은 아니다. 다만 과거의 논의들에서 이 통찰들이 학문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한 채 남아있음으로해서 일반적인 인식을 얻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통찰을 현대 정신치료 이론들과의 관련에서 학문적으로 체계화함으로써 한에 대한 통찰의 일반적인 인식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M. 클라인, R.D.R. 훼어베언, H. 건트립, D.W. 위니캇 등을 위시한 대상관계이론가들에 의하면 개인의 심리구조에 생긴 상처들이 성격장애와 경계형 장애 또는 정신병의 기초가 된다고 한다. 이 대상관계이론의 연구결과들을 한의 이해에 적용하면 세 부류의 한의 구조적 이해가 가능하다.

(1) 원한(怨恨)
원한은 피해의식과 보복감정이 주를 이루는 한이다. 누군가로부터 박해를 받았다는 박해불안이 있으며 그 근처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의 무의식 세계는 나쁘고 무서운 대상들로 가득하며 이 대상들에 대한 공포가 현실세계에서의 대상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대상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질 수 없으며, 대상을 신뢰할 수도 없고, 대상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며 대상에 대해 무자비성을 띈다.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모든 것을 무슨 탓으로 돌리며, 흑백논리에 사로잡히고 부인을 일삼고 병적 동일시에 갇혀 버리는 심리적 특성들을 지닌다.
M. 클라인은 이러한 심리세계를 “편집적 자리”라고 명명하고 이 자리는 생후 첫 4-5개월 사이에 생긴 심리적 상처로 인하여 발달과정에 고착이 일어난 것이며 이러한 심리적 자리가 편집증적 성격과 정신병의 심리적 기초라고 보았다.
임상적 예로 13세 소녀인 H의 경우를 들 수 있다. H는 모든 것이 무섭고 두렵다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까지도 자기를 못살게 구는 박해자로 느끼고 있었다. 학교 또한 무서운 곳이었다. 그곳에는 벌주는 선생님이 있고 자기를 따돌리는 나쁜 친구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H에게는 교회까지도 무서운 곳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곳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차별대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H는 잠을 자는 것도 두렵다고 했는데 그것은 꿈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무섭고 나쁜 대상에게 시달리기 때문이었다. H의 친구관계를 관찰했을 때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되었다. H는 친구들에게 매우 공격적인 싸움꾼으로 인정되고 있었고 거짓말을 잘하고 뒤집어씌우고 극단적인 흑백논리의 사고경향을 갖고 있음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그녀의 일상생활에 관한 보고는 수없이 많은 부당취급 사례들과 억울한 피해사례들로 가득 찼고 이들에 대한 보복감정들로 채색되어져 있었다. 이러한 H양의 심리적 특성을 DSM-Ⅳ의 진단기준을 사용하여 분류한다면 편집증적 인격장애 또는 정신병적 편집증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들은 우리 문화 안에서는 낯선 것들로서 소수의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그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보다는 우리 문화에서 생성된 개념인 한을 사용하여 H양의 심리세계를 원한이라고 분류한다면 그 성격을 이해하는데 친숙한 접근을 허용해 줄 것이다.
동화, 전설 등에 나타나는 많은 한의 이야기도 이런 원한의 부류에 속함을 알 수 있다. 가장 오래되고 널리 퍼져 있는 동화 중 장화홍련전, 콩쥐팥쥐, 호랑이와 남매 등의 내용이 바로 억울하게 죽은 원한과 그 보복을 주제로 삼고 있음도 잘 알려져 있다. 또 실제의 역사인물들 중에서 전설적인 에피소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연산군의 한도 원한으로 분류된다. 그의 원한은 단순히 자신의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의 역사를 알게 됨으로써 생긴 결과로 보아서는 안되며 그의 행태 전체로 파악되어야 하며 그 심리구조의 성질에 따라 한의 성격이 분류되어야 한다.

(2) 허한(虛恨)
우리 문화와 전통에서 한은 원한과 정한의 두 부류로 분류되어 왔으며 이 분류는 특히 문학영역에서 명료하게 논의되어져 왔다. 그러나 한을 보다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허한이라는 제3의 분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허한은 허무한 감정, 헛되다는 느낌, 진짜가 아닌 것 같은 감정이 주된 정서를 이루는 한으로써 전통적으로는 정한의 여러요소들 중 일부분의 요소를 차지해 왔다. 허무의 감정으로서의 한을 특히 강조한 사람으로서는 고은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그의 초기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그 자신의 허한적인 내면세계의 모습과도 일치되고 있다. 그가 가상적인 대상인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쓰여진 책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담긴 환상적인 내용은 허한의 내적세계에 대한 증언으로 읽을 수 있다.
허한의 심리에서 두드러지는 정신활동의 특성 중에는 도피기제가 있음을 우선적으로 알 수 있다. 현실세계는 두렵고 나쁜 대상으로 가득차 있음으로 그 세계로부터 도피하여 자신만의 내적세계로 숨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자신이 숨어 있는 내적공간이 텅비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는데 있다.
M. Klein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스키조이드(schizoid) 문제로 보았고 이것은 편집적 자리와 불가분리의 관계 속에 있다고 보았다. 즉, 허한은 원한의 또 다른 면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H. Guntrip은 이 스키조이드 문제를 하나의 독립적인 심리적 구조로 간주함이 옳다고 주장하는 바 그 주된 이유는 편집적 자리가 비록 무섭고 나쁜 대상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뚜렷한 대상을 갖고 있는 대상관계인 반면 스키조이드 자리는 대상이 없는 대상관계의 포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한인이 무섭고 나쁜 대상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대상세계 속에서 투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반해서 현실적인 대상관계를 단절하고 자기만의 내적 환상세계로 도피하는 허한인의 중심적인 문제는 타고난 자아의 약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자아의 강약의 정도가 허한의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실제의 초기대상과 경험하는 대상관계의 특성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라고 여겨진다.
고은의 경우 그가 경험하는 어린시절의 최초의 경험들이 “대상없음”, “텅 빈 집안에 홀로 있음”의 경험으로 보고하는 바 이는 그의 허한의 형성에 초기 대상관계의 경험이 영향을 끼쳤음을 암시하고 있다.
D. W. Winnicott는 아기의 초기대상과의 관계경험을 통해서 이 허한의 성격형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아기의 참다운 자기의 표현들이 반응되어지지 못하고 반영되지 못할 때 참자기의 요소는 자아의 깊은 영역으로 숨어 버리고 대신 적응과 동조, 그리고 모방의 능력으로서의 거짓자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거짓자기가 인격의 중심에 자리잡게 될 때 그는 진정으로 살아있음에 대한 싱싱한 감정을 상실하고 허무감과 거짓 삶의 느낌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거짓자기의 인격은 그의 삶 속에서 놀이와 문화를 즐기지 못하고 따라서 진정된 삶의 경험의 영역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니캇의 거짓자기에 관한 설명은 허한의 세계에 관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R. D. R. Fairbairn은 또 다른 면에서 이 허한의 세계에 조명을 주고있다. 그는 스키조이드 성격을 논하면서 이 문제를 아직 사랑의 충동과 공격충동이 분화되기 이전인 초기 구강기에 생긴 상처로서 자신의 사랑 안에 공격이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으로부터 사랑을 철수시키고 현실대상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의 삶은 무의미하고 공허하며 그 자아는 무력하게 되어 해체의 위험에 직면하기 때문에 스키조이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무의식적 종말의 환상이 있다고 한다.
이상의 연구결과들은 허한의 내적세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며 동시에 허한의 문제가 원한이나 정한의 한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인 한의 종류로 구분될 필요가 있음을 뒷받침해 준다.
허한을 하나의 독립적인 한의 영역으로 취급해야 하는 또 하나의 필연성은 허한이 사회와 문화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데서 온다. 허한의 사회적 의미는 매우 심각하다. 허한인들은 사회 정치적 분위기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집단심리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그들의 인격 중심에 자신의 진정한 생각과 감정을 기초로 한 가치가 자리잡지 못하고 텅비어 있거나 허무한 감정을 기초로 한 허무주의적 가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허한이 있는 곳에 가치는 자리잡을 수 없으며 가치의 부정은 사회 내에서 나타나는 파괴적인 집단행동의 밑바닥 정서를 이루고 있다.
허한의 사고논리는 극단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모호성도 용납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모호성은 그들에게 혼돈과 무기력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말들과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약함에 대한 스스로의 공포와 경멸에서 오는 방어적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회 정치적 영역에서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 속에 자신을 던지는 경향을 갖는데 그것은 이러한 행동 속에서 스릴과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이야말로 허한인들이 시달리는 허무함과 자신은 진정으로 살아있지 않다는 감정에 대한 최대의 방어가 된다.
이러한 사회적 행동이 표면적으로는 가치 있는 슬로건을 내세울 수 있으나 그 슬로건 밑바닥에 흐르는 무의식적 힘이 지향하는 바는 가치에 대한 부정과 파괴이다. 허한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는 개인의 정신 안에서나 사회현실의 영역에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힘은 본질적으로 가치를 부정하고 존재를 무화(無化)시키는 허무주의적 세계관과 허무적 정서로부터 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한의 성질에 대한 분석없이 사회변혁의 에너지로부터 한의 긍정적 기능을 평가하는 것은 학문적인 타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3) 정한(情恨)
정한은 한국문화 속에서 원한과 함께 한의 두 흐름 중의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이 정한은 우울, 슬픔, 동경등의 정서가 한데 섞인 복합적인 정서이다.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정한의 세계 안에는 그리운 대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상에 대한 관심과 염려, 동경과 자책이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이 깊이 상처입고 죽어가는 또는 심지어 죽은 대상이며 이러한 대상에 대한 관심이 슬픔과 동경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 그토록 상처입고 죽게된 이유가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자책감 때문에 단순한 슬픔의 감정을 넘어서 우울의 감정에로 인도하며 그 우울은 죽은 대상에 대한 동경과 결합하여 자살의 충동을 형성하기도 한다.
원한이 미움의 정서라면 정한은 사랑과 미움의 갈등의 정서로서 대상에게는 사랑을 자신에게는 미움을 발산함으로서 자학적인 경향을 드러낸다. 이 자학적인 경향성은 상처입은 대상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원한이 모든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데 반해 정한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미숙한 형태의 책임의식은 과도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정한인의 심적고통을 극대화시킨다.
심적고통의 절정에서 사용되는 강력한 방어기제는 조적기제(manic defense)로서 이는 대상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 고통스러운 심적 실재에 대한 부정, 그리고 자신이 정신적으로 제거해 버린 대상에 대한 승리감등의 복합적인 정신작용이다. 이 방어기제는 정한인에게 일시적인 심적 해방감을 제공해 줄 수 있으나, 고착이 이루어질 때에는 상처입은 내적대상에 대한 애도(mourning)의 과정을 방해하고 따라서 조울증의 원인이 된다.
M. Klein은 우울적 자리(depressive position)의 연구를 통해서 일 정한의 세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바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본래 생후 4~5개월부터 시작하여 18개월까지의 정상적인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 기간에 심적상처가 생길 때 이 우울적 자리가 극복되지 못함으로써 우울증의 소인을 갖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우울적 자리에서 경험하는 상처입은 내적대상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자학적인 죄책감은 점차로 상처입은 대상을 치유하고 회복하고자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그 내면세계 안의 대상들을 온전하고 좋은 대상들로 창조해 내고 건강한 죄책감의 능력과 창조성의 능력을 형성해 간다는 것이다. Klein에 의하면 한 개인의 인격형성의 과정은 편집-분리적 자리를 거쳐서 우울적 자리에 도달하며 이 우울적 자리를 극복함으로써 건강한 인격의 기초가 형성된다고 한다.
정한은 그 내적 역동으로서 상처입은 대상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충동을 갖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부류의 한 보다도 문화영역에로의 승화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다. 원한과 허한이 예술과 종교의 형태로 승화되어 표현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담겨진 부정적인 충동을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고 하겠으나 정한의 경우 그 자연스런 발전과정으로서 문화창조의 동력으로 화한다.
정한인의 대표적인 예로 김소월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시의 세계를 자신의 내면세계의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상처입은 죽은 그리운 대상이 있으며 그 대상으로 인한 자학적인 아픔이 있다. 그런가 하면 그 대상을 그리워하여 그 대상이 있는 데로 가고자 하는 죽음에의 충동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그는 이 충동에 굴복하여 자살로서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주었다. 그의 시(詩)들은 상처입은 그의 마음, 즉 그의 정한의 문화영역에로 승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3. 한의 신학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
한의 신학의 가능성에 대한 최초의 시사는 김지하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한을 우리민족의 무한한 광맥으로 비유하면서 해방신학이라는 끌을 사용하여 파내고 다듬어질 수 있다고 그 방법론까지 제시하였다. 신학계 안에서 이러한 통찰에 제일 먼저 응답을 보인 사람은 서남동이었다. 그는 김지하의 영향을 인정하면서 해방신학이라는 방법론을 한국의 문화와 역사의 해석에 적용하고자 시도했고 이러한 그이 시도는 민중신학의 태동을 가져왔다. 서남동의 시도에 자극을 받은 현영학은 탈춤을 민중해방의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민중신학의 한의 이해를 문화적으로 심화시키는데 공헌했고 문동환은 한 속에 담긴 “정의에의 요구”라는 측면을 부각시켜서 한이야말로 민중을 구원에로 인도하는 요소라고 생각함으로서 한의 구원론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초기 민중신학자들의 창조적인 공헌들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들이 이어받아서 발전시킬 수 있는 학문적인 토대를 세우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을 한 그 자체로 바라보고 연구하기보다는 당시의 군사독재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한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한을 이용하고자 했던 데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한은 사회변혁을 위한 정책적 또는 정신적 혁명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한의 실제 현상, 내적 역동 및 원인과 변화과정에 대해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의 신학의 새로운 가능성은 자유롭고 열린 시각으로 한의 실재를 관찰하고 살펴보는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한의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볼 때 그 문제를 위치시켜야 할 문맥은 바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치유와 구원임을 알 수 있다. 개인구원이나 사회구원이라는 이분법은 이 구도 안에 자리를 갖지 못한다. 우리는 각자 개인의 한을 책임져야 하며 동시에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동의 한이 있기 때문이다. 원한과 허한 그리고 초기정한이 보여주는 내면세계의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건강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죄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또 이러한 한들 안에서 작용하는 정신역동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은 인간의 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라고 부를만 하다. 그런가 하면 사랑과 감사 그리고 창조적 능력으로 가득한 성숙한 정한이 보여주는 내면세계는 참으로 인간다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구체적으로 화육되어 나타난 인간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원한과 허한 그리고 초기정한을 극복하고 성숙한 정한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의 삶의 모습은 성령의 능력이 그 안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삶을 보여준다.
恨의 신학이라는 말이 가능했던 원래의 테두리는 민중신학이었다. 확실히 민중신학은 과거 토착화신학의 틀을 뛰어넘어 서구 기독교의 신학이 아닌 한국 민중의 시각을 가지고 우리의 영성을 추구하고자 함으로써 한의 신학을 위한 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한의 신학이 심화 발전되지 못함으로서 민중신학 역시 알맹이없는 텅빈 껍데기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다. 오히려 민중신학의 테두리 바깥에서 한의 문제를 진지하게 취급하고 있는 듯하다. 예로 1990년대에 목회상담학 분야에서 한의 문제를 연구하여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의 수가 필자가 아는 범위 안에서만 7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런 류의 신학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의 신학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대부분 그들이 서구 기독교의 틀 안에서 한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신학과 목회상담학적 관심이 새로운 차원에서 다시 만날 때에 한의 신학은 진정으로 하나의 새로운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한(恨)의 심리치료와 현대 정신분석학
1997년 3월 5일
이재훈(한국심리치료연구소)

시작하는 말.

1970년대와 80년대에 한(恨)의 주제가 크게 유행했던 데 비하면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 주제는 이렇다할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허나 유행이 지나갔다고 해서 이 한의 문제가 해결된 것도, 사라진 것도, 그 중요성을 상실한 것도 아니다. 한의 정서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정서요,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서 축적된 정신적 실재로서 지금도 모든 한국인의 심층속에 살아 흐르고 있는 심혼의 강물이기 때문에, 그것은 쉽게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행이 지났다고 생각되는 90년대에 들어와서 이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행해졌고 여러 편의 박사학위 논문이 쓰여진 것을 보더라도 이 주제는 과거의 관심사가 아니라 여전히 오늘의 관심사로 남아있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한국 심리치료학의 바람직한 방향을 전망해 볼 때 우리는 지금까지의 서구 심리학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서 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둔 독자적인 심리이론과 치료이론을 개발하고 창출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하겠는데, 이러한 관심은 우리로하여금 우리자신을 다시 살펴보고 발견하는 과제에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미래적인 관점에서도 한의 문제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의 얼과 정신에 뿌리박은 심리치료학의 발전을 위해 한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이 작업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한 두 사람에 의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긴 시간과 여러 사람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성급하게 무엇을 만들어 보겠다는 자세보다는 긴 안목을 가지고 우선 현대 심리치료이론과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서 한의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통찰의 깊이와 넓이를 확충시켜 나가는 일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에서 본 발표자는 상담학을 공부하고 마음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곳에 오신 여러분들께 한국인의 한과 정신분석학 사이의 대화의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한국문화와 한(恨)

초기에 이루어졌던 한의 논의가 갖는 한계들 중에 중요한 하나는 그 논의들이 학문적으로 확고한 기반을 갖지 못했다고 하는 점이 될 것이다. 민속학, 신화학, 민속예술, 무속학, 정신의학 등의 학자들간의 상호교류가 부족함으로 해서 한의 이해가 학문성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대부분의 논의가 하나의 영역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졌는가 하면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접근 보다는 산문적이고 시적인 접근을 선호함으로써 각 영역 내에서 그리고 여러 영역들 간의 진지한 토론의 여과과정 없이 수많은 독백들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새롭게 생겨난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한국문화 안에서 한이 가지는 의미가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다양해짐으로서 혼동과 모순들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논의를 진행시키기 이전에 먼저 한의 개념 안에 들어와 있는 몇 가지 혼동들을 지적해 보겠다.
첫째, 한을 생명에너지 그 자체로서 보는 혼동이 있다. 소설가 박경리는 한을 그 자체로서 무한히 흐르는 민족정신의 원동력과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는 한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보다는 한은 본래의 순수한 정신 에너지가 상처입고 왜곡됨으로써 오염된 정신 에너지로 보아야 한다. 이 한의 에너지가 긍정적 에너지로 변화될 수 있고 예술 창조와 건강한 사회건설의 원동력으로 활용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변화와 승화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 변화와 승화의 과정을 거치기 이전의 한은 미화될 수 없는 요소를 그 안에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한을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이해하는 혼동이다. 한의 구체적인 자리를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억압적인 사회의 구조에 두고자 했던 시도들이 있어왔다. 이런 현상은 한편으로 한의 개념의 확장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개념의 확장이 살아있는 인간의 마음과 감정에 자리잡고 있는 한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을 때, 그런 개념은 또 다른 혼동을 가중시킬 수 있다.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구조악으로 인해 한이 생길 수 있다. 남북의 분단이 민족의 가슴에 한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구조악이나 남북분단이 곧 한은 아니다. 다만 그 분단으로 인해 생긴 한을 가진 사람의 詩學안에서 분단은 곧 한이라는 식의 개념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을뿐이다.
셋째, 한과 정신병리와의 관계에 대한 혼동이 있다. 한은 곧 정신병리라고 생각하는 견해나 한은 한이며 정신병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는 두 개의 극단적인 견해가 있다. 그러나 좀 더 진지하게 살펴본다면 한의 성격과 질에 따라서 정신병리일 수도 있고 보다 건강에 가까운 모습일 수도 있다. 사실 한은 한편으로 정신병리의 총체적인 표현일 수 있으며 다른 한편 그것은 승화되고 변화될 때 건강한 삶의 모습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깊은 정신병리와 관련된 한으로부터 건강에 관련된 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질의 한의 종류가 있으며 이 다양성 안에는 내적인 관련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혼동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한에 대한 연구가 정신병리의 연구결과들과 관련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넷째, 한을 심적 상처의 기억과 동일시하는 혼동이 있다. 한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할 때 그것은 쉽게 그 사람에게 아픔, 슬픔, 분노, 수치 등을 수반하는 기억과 동일시된다. 물론 그것은 한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한은 보다 깊은 차원을 갖는다.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심적 상처의 기억들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상처들 배후에는 그것들이 상처로 기억되게 하는 원인으로서의 상처들이 있다. 근본적인 상처는 의식안에 자리잡고 있지 아니하고 무의식안에 그것도 아주 깊은 인격의 핵심구조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 한의 근원적 자리가 있다. 이 근원적 자리에 대한 이해없이는 한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가 불가능하다.
다섯째, 개인의 한과 집단적인 한의 문제에 관련된 혼동이 있다. 집단은 개인으로 구성되며 집단 안에서 개인은 집단과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간다. 이 둘은 뗄 수 없는 상호연관성 속에 있다. 특히 한의 연구에 있어서 개인의 한과 집단적인 한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개인의 한의 연구를 위해서 개인정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면 집단적인 한의 연구를 위해서는 집단적 정신의 산물인 신화, 전설, 동화, 종교, 역사, 예술 등의 연구가 필요하다.

2. 한(恨)의 개인 심리적 구조

한을 개인의 심리구조에 생긴 상처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문화 안에서 전혀 새로운 통찰은 아니다. 다만 과거의 논의들에서 이 통찰들이 학문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한 채 남아있음으로해서 일반적인 인식을 얻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통찰을 현대 정신치료 이론들과의 관련에서 학문적으로 체계화함으로써 한에 대한 통찰의 일반적인 인식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M. 클라인, R.D.R. 훼어베언, H. 건트립, D.W. 위니캇 등을 위시한 대상관계이론가들에 의하면 개인의 심리구조에 생긴 상처들이 성격장애와 경계형 장애 또는 정신병의 기초가 된다고 한다. 이 대상관계이론의 연구결과들을 한의 이해에 적용한다면 세 부류의 한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가능하다.

(1) 원한(怨恨)
원한은 피해의식과 보복감정이 주를 이루는 한이다. 누군가로부터 박해를 받았다는 박해불안이 있으며 그 근처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의 무의식 세계는 나쁘고 무서운 대상들로 가득하며 이 대상들에 대한 공포가 현실세계에서의 대상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대상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질 수 없으며, 대상을 신뢰할 수도 없고, 대상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며 대상에 대해 무자비성을 띈다.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모든 것을 무슨 탓으로 돌리며, 흑백논리에 사로잡히고 부인을 일삼고 병적 동일시에 갇혀 버리는 심리적 특성들을 지닌다.
M. 클라인은 이러한 심리세계를 “편집적 자리”라고 명명하고 이 자리는 생후 첫 4-5개월 사이에 생긴 심리적 상처로 인하여 발달과정에 고착이 일어난 것이며 이러한 심리적 자리가 편집증적 성격과 정신병의 심리적 기초라고 보았다.
임상적 예로 13세 소녀인 H의 경우를 들 수 있다. H는 모든 것이 무섭고 두렵다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까지도 자기를 못살게 구는 박해자로 느끼고 있었다. 학교 또한 무서운 곳이었다. 그곳에는 벌주는 선생님이 있고 자기를 따돌리는 나쁜 친구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H에게는 교회까지도 무서운 곳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곳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차별대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H는 잠을 자는 것도 두렵다고 했는데 그것은 꿈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무섭고 나쁜 대상에게 시달리기 때문이었다. H의 친구관계를 관찰했을 때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되었다. H는 친구들에게 매우 공격적인 싸움꾼으로 인정되고 있었고 거짓말을 잘하고 뒤집어씌우고 극단적인 흑백논리의 사고경향을 갖고 있음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그녀의 일상생활에 관한 보고는 수없이 많은 부당취급 사례들과 억울한 피해사례들로 가득 찼고 이들에 대한 보복감정들로 채색되어져 있었다. 이러한 H양의 심리적 특성을 DSM-Ⅳ의 진단기준을 사용하여 분류한다면 편집증적 인격장애 또는 정신병적 편집증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들은 우리 문화 안에서는 낯선 것들로서 소수의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그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보다는 우리 문화에서 생성된 개념인 한을 사용하여 H양의 심리세계를 원한이라고 분류한다면 그 성격을 이해하는데 친숙한 접근을 허용해 줄 것이다.
동화, 전설 등에 나타나는 많은 한의 이야기도 이런 원한의 부류에 속함을 알 수 있다. 가장 오래되고 널리 퍼져 있는 동화 중 장화홍련전, 콩쥐팥쥐, 호랑이와 남매 등의 내용이 바로 억울하게 죽은 원한과 그 보복을 주제로 삼고 있음도 잘 알려져 있다. 또 실제의 역사인물들 중에서 전설적인 에피소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연산군의 한도 원한으로 분류된다. 그의 원한은 단순히 자신의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의 역사를 알게 됨으로써 생긴 결과로 보아서는 안되며 그의 행태 전체로 파악되어야 하며 그 심리구조의 성질에 따라 한의 성격이 분류되어야 한다.

(2) 허한(虛恨)
우리 문화와 전통에서 한은 원한과 정한의 두 부류로 분류되어 왔으며 이 분류는 특히 문학영역에서 명료하게 논의되어져 왔다. 그러나 한을 보다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허한이라는 제3의 분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허한은 허무한 감정, 헛되다는 느낌, 진짜가 아닌 것 같은 감정이 주된 정서를 이루는 한으로써 전통적으로는 정한의 여러요소들 중 일부분의 요소를 차지해 왔다. 허무의 감정으로서의 한을 특히 강조한 사람으로서는 고은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그의 초기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그 자신의 허한적인 내면세계의 모습과도 일치되고 있다. 그가 가상적인 대상인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쓰여진 책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담긴 환상적인 내용은 허한의 내적세계에 대한 증언으로 읽을 수 있다.
허한의 심리에서 두드러지는 정신활동의 특성 중에는 도피기제가 있음을 우선적으로 알 수 있다. 현실세계는 두렵고 나쁜 대상으로 가득차 있음으로 그 세계로부터 도피하여 자신만의 내적세계로 숨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자신이 숨어 있는 내적공간이 텅비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는데 있다.
M. Klein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스키조이드(schizoid) 문제로 보았고 이것은 편집적 자리와 불가분리의 관계 속에 있다고 보았다. 즉, 허한은 원한의 또 다른 면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H. Guntrip은 이 스키조이드 문제를 하나의 독립적인 심리적 구조로 간주함이 옳다고 주장하는 바 그 주된 이유는 편집적 자리가 비록 무섭고 나쁜 대상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뚜렷한 대상을 갖고 있는 대상관계인 반면 스키조이드 자리는 대상이 없는 대상관계의 포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한인이 무섭고 나쁜 대상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대상세계 속에서 투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반해서 현실적인 대상관계를 단절하고 자기만의 내적 환상세계로 도피하는 허한인의 중심적인 문제는 타고난 자아의 약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자아의 강약의 정도가 허한의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실제의 초기대상과 경험하는 대상관계의 특성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라고 여겨진다.
고은의 경우 그가 경험하는 어린시절의 최초의 경험들이 “대상없음”, “텅 빈 집안에 홀로 있음”의 경험으로 보고하는 바 이는 그의 허한의 형성에 초기 대상관계의 경험이 영향을 끼쳤음을 암시하고 있다.
D. W. Winnicott는 아기의 초기대상과의 관계경험을 통해서 이 허한의 성격형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아기의 참다운 자기의 표현들이 반응되어지지 못하고 반영되지 못할 때 참자기의 요소는 자아의 깊은 영역으로 숨어 버리고 대신 적응과 동조, 그리고 모방의 능력으로서의 거짓자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거짓자기가 인격의 중심에 자리잡게 될 때 그는 진정으로 살아있음에 대한 싱싱한 감정을 상실하고 허무감과 거짓 삶의 느낌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거짓자기의 인격은 그의 삶 속에서 놀이와 문화를 즐기지 못하고 따라서 진정된 삶의 경험의 영역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니캇의 거짓자기에 관한 설명은 허한의 세계에 관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R. D. R. Fairbairn은 또 다른 면에서 이 허한의 세계에 조명을 주고있다. 그는 스키조이드 성격을 논하면서 이 문제를 아직 사랑의 충동과 공격충동이 분화되기 이전인 초기 구강기에 생긴 상처로서 자신의 사랑 안에 공격이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으로부터 사랑을 철수시키고 현실대상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의 삶은 무의미하고 공허하며 그 자아는 무력하게 되어 해체의 위험에 직면하기 때문에 스키조이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무의식적 종말의 환상이 있다고 한다.
이상의 연구결과들은 허한의 내적세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며 동시에 허한의 문제가 원한이나 정한의 한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인 한의 종류로 구분될 필요가 있음을 뒷받침해 준다.
허한을 하나의 독립적인 한의 영역으로 취급해야 하는 또 하나의 필연성은 허한이 사회와 문화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데서 온다. 허한의 사회적 의미는 매우 심각하다. 허한인들은 사회 정치적 분위기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집단심리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그들의 인격 중심에 자신의 진정한 생각과 감정을 기초로 한 가치가 자리잡지 못하고 텅비어 있거나 허무한 감정을 기초로 한 허무주의적 가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허한이 있는 곳에 가치는 자리잡을 수 없으며 가치의 부정은 사회 내에서 나타나는 파괴적인 집단행동의 밑바닥 정서를 이루고 있다.
허한의 사고논리는 극단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모호성도 용납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모호성은 그들에게 혼돈과 무기력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말들과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약함에 대한 스스로의 공포와 경멸에서 오는 방어적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회 정치적 영역에서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 속에 자신을 던지는 경향을 갖는데 그것은 이러한 행동 속에서 스릴과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이야말로 허한인들이 시달리는 허무함과 자신은 진정으로 살아있지 않다는 감정에 대한 최대의 방어가 된다.
이러한 사회적 행동이 표면적으로는 가치 있는 슬로건을 내세울 수 있으나 그 슬로건 밑바닥에 흐르는 무의식적 힘이 지향하는 바는 가치에 대한 부정과 파괴이다. 허한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는 개인의 정신 안에서나 사회현실의 영역에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힘은 본질적으로 가치를 부정하고 존재를 무화(無化)시키는 허무주의적 세계관과 허무적 정서로부터 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한의 성질에 대한 분석없이 사회변혁의 에너지로부터 한의 긍정적 기능을 평가하는 것은 학문적인 타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3) 정한(情恨)
정한은 한국문화 속에서 원한과 함께 한의 두 흐름 중의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이 정한은 우울, 슬픔, 동경등의 정서가 한데 섞인 복합적인 정서이다.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정한의 세계 안에는 그리운 대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상에 대한 관심과 염려, 동경과 자책이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이 깊이 상처입고 죽어가는 또는 심지어 죽은 대상이며 이러한 대상에 대한 관심이 슬픔과 동경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 그토록 상처입고 죽게된 이유가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자책감 때문에 단순한 슬픔의 감정을 넘어서 우울의 감정에로 인도하며 그 우울은 죽은 대상에 대한 동경과 결합하여 자살의 충동을 형성하기도 한다.
원한이 미움의 정서라면 정한은 사랑과 미움의 갈등의 정서로서 대상에게는 사랑을 자신에게는 미움을 발산함으로서 자학적인 경향을 드러낸다. 이 자학적인 경향성은 상처입은 대상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원한이 모든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데 반해 정한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미숙한 형태의 책임의식은 과도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정한인의 심적고통을 극대화시킨다.
심적고통의 절정에서 사용되는 강력한 방어기제는 조적기제(manic defense)로서 이는 대상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 고통스러운 심적 실재에 대한 부정, 그리고 자신이 정신적으로 제거해 버린 대상에 대한 승리감등의 복합적인 정신작용이다. 이 방어기제는 정한인에게 일시적인 심적 해방감을 제공해 줄 수 있으나, 고착이 이루어질 때에는 상처입은 내적대상에 대한 애도(mourning)의 과정을 방해하고 따라서 조울증의 원인이 된다.
M. Klein은 우울적 자리(depressive position)의 연구를 통해서 일 정한의 세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바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본래 생후 4~5개월부터 시작하여 18개월까지의 정상적인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 기간에 심적상처가 생길 때 이 우울적 자리가 극복되지 못함으로써 우울증의 소인을 갖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우울적 자리에서 경험하는 상처입은 내적대상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자학적인 죄책감은 점차로 상처입은 대상을 치유하고 회복하고자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그 내면세계 안의 대상들을 온전하고 좋은 대상들로 창조해 내고 건강한 죄책감의 능력과 창조성의 능력을 형성해 간다는 것이다. Klein에 의하면 한 개인의 인격형성의 과정은 편집-분리적 자리를 거쳐서 우울적 자리에 도달하며 이 우울적 자리를 극복함으로써 건강한 인격의 기초가 형성된다고 한다.
정한은 그 내적 역동으로서 상처입은 대상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충동을 갖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부류의 한 보다도 문화영역에로의 승화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다. 원한과 허한이 예술과 종교의 형태로 승화되어 표현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담겨진 부정적인 충동을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고 하겠으나 정한의 경우 그 자연스런 발전과정으로서 문화창조의 동력으로 화한다.
정한인의 대표적인 예로 김소월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시의 세계를 자신의 내면세계의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상처입은 죽은 그리운 대상이 있으며 그 대상으로 인한 자학적인 아픔이 있다. 그런가 하면 그 대상을 그리워하여 그 대상이 있는 데로 가고자 하는 죽음에의 충동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그는 이 충동에 굴복하여 자살로서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주었다. 그의 시(詩)들은 상처입은 그의 마음, 즉 그의 정한의 문화영역에로 승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3. 한의 치유 - 현대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현대 정신분석학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대상관계이론은 한의 치유라는 우리의 관심주제에 커다란 빛을 비추어 준다.
Klein 학파는 무의식적 환상내용, 정신 안에서 작용하는 질투와 질시의 파괴적 세력, 그리고 분리, 동일시, 조적기제와 같은 강력한 방어기제들의 활동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제공해 줌으로써 원한과 허한, 그리고 우울한 정한이 치유되고 보복감정과 허무감, 또는 우울한 감정대신 창조적인 충동과 감사의 능력을 지닌 내면세계를 건설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이들은 무의식의 깊은 차원에서 일어나는 내적 역동세계를 보여줌으로써 한의 치유를 위해 필수적인 한의 세계에 대한, 적어도 간접적인, 이론적 준거를 제공해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R.D.R Fairbairn은 그의 분열성 인격의 문제(schizoid problem)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한의 이해와 치료에, 특히 허한의 이해와 치료에 많은 빛을 주었다. 그는 일반적인 정신장애 현상들, 즉 공포증, 히스테리, 강박증, 편집증 등이 실은 보다 깊은 정신적인 상처인 스키조이드 상처에 대한 방어현상들인 것을 밝히면서 다양한 증세들 밑바닥에 정신의 근원적인 상처가 존재하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 정신과 인격의 보다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근원적인 상처와 여기에서 파생된 정서와 생각 및 환상들을 우리는 한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Fairbairn은 특히 이러한 한의 세계안에 살고 있는 무섭고 나쁜 대상들을 축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실제의 좋은 대상과의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좋은 대상과의 실제 경험을 통해 그 좋은 대상이 내면화되기 이전에는 그 나쁜 대상들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통찰은 한의 세계안에 있는 분노와 증오, 보복감정, 우울, 공허감 등을 불러 일으키는 소위 악한 귀신들을 내쫓는 것은 먼저 그 사람의 정신안에 좋고 감사한, 살아있는 내적대상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제공한다.
이처럼 Klein과 Fairbairn의 공헌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근원적 상처에 대한 치유원리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공헌은 도날드 위니캇으로부터 왔다.
그는 이 근원적 상처가 좋은 엄마의 사랑을 받지못한 아기시절의 경험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생의 처음 시기에 살아있는 감정을 지닌 창조적 존재로서의 “나”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엄마의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받지못하면 그 인격은 참된 나로 태어나지 못하고 그 인격의 중심에 텅빈 감정, 허무감, 박해의식과 이것들에 대한 방어들로 구성된 거짓자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심리치료는 이 근원적 상처를 가진 사람으로하여금 참다운 자기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과정이다. 즉, 치료자는 아기를 돌보는 엄마의 자세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아기를 향한 엄마의 사랑과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요소가 강조되는 점이 현대 정신분석학의 치료이론이 과거의 전통적인 정신분석학 치료이론과 구별되는 점이다.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에서는 치료자와 환자사이의 객관적이고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했다면, 현대 정신분석학에서는 치료자와 환자사이에 친밀하고 따스한 인격적(personal)인 관계, 깊은 감정적인 접촉이 이루어지는 관계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감정이 담긴 사랑을 주지못하는 치료자는 환자에게 원래의 상처를 다시 경험하게 할뿐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자의 깊은 상처는 갓난아기 시절에 친밀하고 따스한 엄마의 사랑을 경험하는 데 따른 실패였기 때문이다.
Harry Guntrip에 의하면 심리치료과정은 세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첫째, 라포 형성단계, 둘째, 해석을 통한 저항의 극복과 전이해소의 단계, 셋째, 치료자와 환자사이의 새롭고 진정한 관계의 경험을 통한 새로운 인격의 탄생과 성장단계이다. 많은 경우에 치료의 성패는 처음 두 단계에서가 아니라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 결정된다. 치료자와 환자사이에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전이의 해소를 통해서 환자의 과거의 문제들이 남김없이 해석이 되었다고 해도 그가 새로운 “참된 자기”로 다시 태어나는 일에 실패한다면 치료는 실패한 것이다. 이 세 번째 단계에서 강조되는 것은 환자가 자신의 과거의 흔적들을 투영하고 그래서 그것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스크린으로서의 치료자가 아니라 실제로 환자에게 깊은 사랑을 주는 실제 대상(real object)로서의 치료자인 것이다.

맺으면서.

결국 우리는 치료자로서의 우리 자신의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치료자가 환자를 위해 실제로 좋은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과연 우리 자신은 어떠한가? 과연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만큼 자유롭고, 성숙하고, 건강하고, 좋은 사람인가?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물론 여기에서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질 필요는 없다. 우리가 완전하기에 다른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모두의 부족함 때문에 서로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함께 나누고 채워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안에 사랑을 키워가는 일을 통해서 한이 사랑의 능력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2011-01-06 19: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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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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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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